크림, 규정상 정의. 크림은 탈지 작업을 통해 분리한 우유의 지방을 의미한다.

1934년 6월 29일 자 법은 일부 첨가물의 소량 사용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첨가도 금지하고 있다. (자당은 최고 15%, 유산균과 안정제는 최고 0.5% 첨가 가능) 또한, 1980년 4월 법령은 유지방 함량과 농도 기준에 따라 크림의 분류를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크림이란 전지우유의 탈지 작업에서 유래한 원료로, 100g당 유지방 함량은 최소 30g이어야 한다. 저지방 크림의 경우에도 유지방 함량이 100g당 적어도 12g은 되어야 한다. 함량 미달일 경우, 크림이란 명칭은 허용되지 않는다.

크림은 우유에 함유된 작은 지방 입자들의 농축물이다. 탈지 작업 후 균질화 단계를 거쳐서 지방질 유탁액(emulsion)을 안정화한다.

저지방(지방 함유 12~30%)이든 아니든(최소 30%), 크림은 적용된 열처리(UHT 살균, 파스퇴르 살균, 저온처리), 점성도(액상, 반고체, 고체), 구조(크렘 푸에떼crème fouettée, 크렘 아 푸에떼crème à fouetter) 또는 포장법(방부처리 여부, 용기, 파우치, 병, 팩, 스프레이 등)에 따라 다르게 분류한다.

두 대표 크림...

1
크렘 플뤼드/리끼드 crème fluide/liquide 액상크림

균 배양이나 숙성을 하지 않아 부드러운 조직감을 유지한다. 살균처리나 멸균처리 (UHT 크림) 가능하며 저지방으로 만들 수 있다.

2
크렘 푸에떼 crème fouettée 휘프드 크림

압축 또는 에어로졸 형태로 포장되며, 단단한 에멀전 형태이다. 첨가제나 향료 및 색소를 가미할 수 있다.

노하우와 고품질의 떼루아르

크림의 장점

DESSERT THROUGH THE AGES

  • 1

    슈 페이스트리나 크렘 푸에떼 등과 같은 것은 아니었으나 고대시대부터 달콤하게 먹고 있었다. 당시 달콤한 것들 중 가장 펑키한 것은 오일과 꿀로 요리한 밀가루 걀레뜨(galette)다. 이 토속적인 과자류는 대규모 통과의례에 사용되었다. 기쁘게도 인류는 금방 갸또(gâteau).밀가루를 베이스로 한 과자의 총칭를 좋아하게 된다. 당시 빠띠쓰리의 발전을 이미 느끼고 있던 플리니우스가 남긴 오래된 기록이 있는데, 그는 빠띠쓰리에 대해 “달걀, 우유 그리고 버터와 함께”라고 묘사한 바 있다.

  • 2

    중세시대에는 얇거나, 속 재료를 넣었거나 콘처럼 돌돌 말린 와플이 큰 인기를 얻었다. 빠띠씨에와 푸아쓰(fouace)비스킷의 일종 빵집들은 축제용으로 운반 가능한 화덕도 갖추고 있었다. 껍질에 과일이 들어간 빠떼는당시 케이터링 업체의 전문 요리였다.

  • 3

    르네상스는 다른 예술과 함께 빠띠쓰리가 많이 발전한 시대이다. 이 분야 최초 저서인 빠스띠씨에 프랑수아(Pasticier François, 1654)를 보면 설탕이 부각됨을 알 수 있다. 쁘띠 슈(petits choux), 머랭(meringues) 등 달콤한 먹거리가 바로 이 시대에 태어났다. 이 시기는 또한, 빵 데삐쓰(pain d’épices)에 독을 넣어 궁중의 적들을 몰아내는데 이용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제과업은 설탕을 끓여서 만드는 제과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였다. 당시 사회 분위기 중, 식사 말미를 새롭게 창조해 꾸미려는 의지가 있었고, 이것이 디저트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식사를 마치고 상을 치우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던 단어 디저트(dessert)는 이때부터 소화를 돕는 작은 크기의 달콤한 먹거리를 뜻하게 되었다. 단 먹거리와 짠 먹거리의 구분이 더 확연해졌고, 버터, 초콜릿, 커피는 빠띠쓰리의 기준이 되는 원료로 자리를 잡아 계속해서 그 입지를 유지하게 된다.

  • 4

    유명 궁중 요리사 바뗄(Vatel)은 17세기, 궁중에 프리앙디즈(friandise)단 과자류를 소개한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루이 14세 시절, 삐에쓰 몽떼(pièces montées)는 연회에서 일종의 ‘늘임표’와 같은 역할을 했다.

  • 5

    18세기 달콤한 취향은 계속된다. 샹띠리 크림이 급증하고, 아이스크림도 많은 사랑을 받는다. 현재도 남아있는 파리의 유명 레스토랑 프로꼬쁘(Procope)에서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모두 맛볼 수 있었다. 르노트르(Lenôtre) 정원에서처럼 영감을 받은 갸또들은 제비꽃, 쟈스민,장미 등과 같은 꽃향으로 요리된다. 앤틸리스제도산 설탕과 바닐라는 이때 명품이 번성하였던 것처럼v퍼져나갔다.

  • 6

    그리고 드디어 앙또냉 꺄렘(Antonin Carême) 시절, 앙또냉(Antonin)은 19세기 빠띠쓰리를 장식적이고 고급스러운 단계로 끌어올리면서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예술에는 5가지가 있다. 회화, 조각, 시, 음악 그리고 건축인데 건축의 핵심가지는 빠띠쓰리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 7

    20세기 초부터 전문 빠띠쓰리는 요리학에서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기술과 노하우에 대해 외국 여러 나라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냉장과 전기가 보편화되면서 주요 도시에 빠띠쓰리가 자리를 잡게 되고, 제빵사들과 주부들은 갸또를 만들기 시작한다. 일요일, 갸또는 아이스크림과 함께 경합을 벌일 만큼 즐겨 찾는 음식이 되었는데, 유급휴가가 생기면서 처음으로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에게 특히 많은 사랑을 받았다.

  • 8

    1960년대까지 버터크림과 향을 가미한 앙트르메가 유행한다. 글라스 루와얄(glace royale)슈거 파우더와 달걀 흰자를 혼합과 아몬드 페이스트가 장식에 다량 사용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 9

    크렘 랑베르세(crème renversée)와 히 오 레(riz au lait)의 시대가 지나고, 현대의 시간이 도래한다. 이때는 칼로리를 줄인 가벼운 디저트를 많이 찾게 된다. 롤링스톤을 듣던 시절, 바바루아(bavarois) 크림, 과일 무스 그리고 싸부아(Savoie) 비스킷을 먹는다.

  • 10

    요즘 빠띠쓰리계는 매장과 유명 이름들로 성행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설탕과 지방을 줄이고, 디저트 카트 보다는 좀 더 세련된 플레이트가 대세다. 젊은 셰프들은 요리 기술을 사용한 조리된 디저트를 만들고 있다. 식후 카페 순서에서까지 야채를 즐기며, 사이펀(siphon)을 이용하여 텍스처를 가볍게 한다. 디자인은 음식을 먹는 새로운 방식과 감각에 의미를 부여하며, 식사 말미를 장식하는 창의적인 후식에 관심을 두고 있다.

빠띠쓰리 역사는 오로지 기쁨으로 가득찬 것처럼 보인다..

수세기 동안 이어진 달콤한 진미의 시대는 외교적 여러 모험과 산업적 역사로 점철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디저트 또한 우리가 사는 사회처럼 현대화 되었다. .

  • 네모나게, 둥글게 또는 쌓아올려서, 제각각 등 빠띠쓰리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표상적인 모양

    테이블 웨어가 번창하며 디저트에도 기여를 하게 되었다. 갸또는 예술적 창작품의 진정한 상징이 되었는데, 사원이나 군용 트로피 모양의 삐에쓰 몽떼(pièces montées)는 제국 시절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18세기에는 사과나 배를 정성스럽게 조각내어 껍질과 함께 간결하게 세팅하는 게 세련된 것으로 통했다. 빵틀과 빵틀을 만드는 재질의 역사는 기술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으며, 제대로 된 표상적인 모양의 제품을 생산하기에 이른다. 구운 흙, 구리, 양철, 실리콘 등을 소재로 한 것들이 수세기에 걸쳐 생산된다. 구겔호프와 그 특유의 틀은 18세기에 만들어졌다. 이러한 발명품은 역사와 함께 지속되기도 변하기도 한다. 건축처럼 갸또의 크기는 사용법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자면, 1770년 프랑스 로렌(Lorraine) 지방의 꼬메르씨(Commercy)에서 첫선을 보인 마들렌 틀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 먹음직스러운 모양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요즈음 일부에서는 이 틀을 벗어난 새로운 마들렌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필립 꽁띠치니(Philippe Conticini)는 어릴 적 자신이 보았던 대로, 본인의 손보다 좀 더 크게 마들렌을 굽고 있으며, 삐걀(Pigalle) 지역의 빠띠씨에인 로랑 파브르모(Laurent Favre-Mot)는 500g의 반죽으로 XXXL 사이즈의 마들렌을 만들고 있다.

  • 빠띠쓰리는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삶에 쉼표를 찍어준다.

    상징적인 이야기

    신에게 바치는 제물, 세례를 받은 날 먹는 케이크, 결혼식의 상징 삐에쓰 몽떼, 생일상 위에 올라가는 사탕, 크리스마스의 13가지 디저트 등 부드럽고 달콤한 먹거리는 잔치에 결코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수많은 레시피가 그렇게 생겨난 것이다. 비스뀌 아 라 뀌이에르(biscuits à la cuillère)손가락 모양의 비스킷는 딸레랑(Talleyrand)이 마데이라(Madère포르투갈령 섬)산 포도주에 적셔 먹기 위해 길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프랑스 로렌 지방에 정착한 폴란드 왕이자 루이 15세의 장인 스타니라스 레슈친스키(Stanilas Leczynski, 1677-1766)는 그 지역 구겔호프가 너무 뻑뻑해서 럼주가 들어간 설탕 시럽에 적셔 먹었는데, 스토에(Stoher)가 크림을 덮어 대중화시킨 바바(baba)의 조상은 이렇게 세상의 빛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브리지뜨 바르도의 예도 있다. 1955년 그녀는 쌩트로뻬(Saint-Tropez)에서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를 촬영할 당시, 빠띠쓰리 미꺄(Micka)의 따르뜨 트로뻬지엔느(tropézienne)를 주기적으로 먹었 는데, 설탕과 크림으로 된 이 따르뜨 이름을 그녀가 직접 지었다고 한다.

  • 세계의 풍부한 요리 가운데 프랑스 스타일의 빠띠쓰리는 반박의 여지가 없는 입지를 형성하고 있다. 빠띠쓰리는 곧 “프랑스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프랑스 스타일 또한 다양한 영향을 받은 바 있다.

    갸또의 여행

    빠띠쓰리는 먼저 이탈리아의 것이었다. 메디치(Medici) 가문은 빠뜨 아 슈의 창시자인 포펠리니(Popelini)를 프랑스 궁중으로 보낸다. 17세기 이탈리아는 제과의 나라였는데, 잼과 아몬트 페이스트를 유행시킨 나라가 바로 이탈리아이다. 설탕을 끓여 피규린과 기타 모티브를 제작할 수 있는 이탈리아 제과업체들의 서비스를 얻기 위해 유럽 각국의 궁중들은 서로 경쟁하였다. 그리고 회화적인 빠띠씨에 꺄렘이 있는 프랑스가 이 기술을 손에 넣게 된다. 이리하여 프랑스식 빠띠쓰리는 프랑스 요리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이어서 프랑스에서는 미식 문학이 급속도로 번성하고, 라블레(Rabelais), 그리모 드 라 레니에르(Grimod de la Reynière), 브리야 사바랭(Brillat Savarin), 뒤마(Dumas), 보들레르(Baudelaire) 그리고 프루스트(Proust) 등이 미식 문화를 통해 배를 채우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빠띠쓰리 분야에는 국경을 초월하는 유산과 정체성이 형성되었고, 그러한 유럽 스타일은 지금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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